대만이라는 국가에 대한 생각 일상속의생각

WBC를 통해 알게된 대만 사람들의 생각
wbc를 보다가 대만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유는 국교를 단절했기 때문이라는데...
근데 포인트 하나, 그 당시 대만과 국교를 단전한건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나라같이 수출에 목숨건 나라는 중국을 포기할 수가 없었고...살기위한 전략이었다.
또한 일본도 더 먼저 단절했다고 들었는데...일본보다 우리나라를 더 싫어한다는 건 납득이 안된다.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이 싸우기전에...일본이 중국에게 했던 짓? 보다...
단절이 더 먼저라면...할말은 없다...하지만 보편타당적 관점에서 보면 옳지 않다...


그렇다면 왜?
내가 생각할 때는 질투심이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원래 잘살았고 대만이 따라잡기에는 너무 높은 곳에 있다.
하지만 원래 대만과 한국은 예전에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불렸을 정도로...비슷했다.
원래 비교할때 자기랑 비슷한 위치에 있는 애들하고 하지...저 높은 위치에 있는 애들은
그럴 맘도 안생긴다...
한국이 더욱 잘나갈수록 이들은 더 쓰라림을 맛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되나?
이제 와서 다시 정상화하라고는 못하겠다...
중국의 조건이 그것이었고...선례가 없는이상 우리가 하기에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아무튼...우리나라는 더 나가야한다...국교까지 끊고 선택한 중국 아닌가?
우리가 못난 모습을 보이면 그들은 더욱 우리를 비웃을 것이다.
(참고로 그런 반한 시위...솔직하게 아무런 감정도 없다...그만했으면...안쓰럽다...한국에서는 관심도 없는데 ㅡㅡ)

어쨋든...그리고...또
위와 같은 이유로 대만은 자국 국기를 대회에서 사용할 수가 없는데...
티비랑 신문은 몰라도...인터넷 매체정도는 대만 국기를 표현해 주었으면 한다.

이정도는 대만 국기로 표시하는건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공공기관이나 매체에서 사용은 국가가 사용하는 것이니 우리가 약속한 것에 위반되어...문제가 될 수 있지만
일반 사람 혹은 기업은 이정도는 표시해줘도...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네이버...어짜피 중국하고 관련없자나? 눈치볼 필요 있나?


결론은 국가는 단절하고 민간 차원이나 국가 범위가 아닌 곳에서는 관계를 계선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덧글

  • 공손연 2013/03/08 21:55 # 삭제 답글

    곧 분사한다지만 게임도 팔아야 하고 네이버가 중국에 대한 꿈을 아예 버릴게 아니면 괜히 긁어부스럼 만들이유는 없죠.
  • 벼리 2013/03/10 15:02 #

    네이버가 게임쪽에도 손을 대고 있었나 보군요...그럼 관련이 있겠네요 ~_~
  • Liadain Rocharussa 2013/03/08 22:14 # 답글

    모호한 질투심이라기보다 당시 우리나라 정부의 실책이 컸습니다. 우리나라 정부는 단교 직전까지 단교는 없다라고 하고 대만과의 우방관계를 주장했지만, 거의 첩보작전에 가깝게 대사관 직원들을 출국시켰고, 단교 당일 정말 대만 정부에 일방적인 통보 형식으로 단교를 감행함으로서 대만 정부는 물론 대만 국민의 공분을 샀었죠. 더욱이 단교 이후 중국과의 수교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발표했지만, 단교 이전부터 중국 정부를 통해서 노태우 정부가 중국에 접근을 하고 있었던 사실이 대만에 폭로되면서 당시 한국은 가히 배신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 지나가다 2013/03/08 23:18 # 삭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110500329205011&editNo=3&publishDate=1988-11-05&officeId=00032&pageNo=5&printNo=13267&publishType=00020&from=news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foreign_news&wr_id=15810

    그럼 이건 뭘까요? 대만은 단교 이전부터 한국을 개무시했습니다. 단교때문에 한국 싫어한다는 건 다 핑계고 결론은 한국이 대만보다 잘나가니깐 열폭하는거죠.
  • 함월 2013/03/09 00:37 #

    그렇게 되면 대만이 UN에서 쫓겨나자마자 재빨리 손을 끊은 일본이 왜 아직도 대만인들에게 인기가 많은지 설명이 안 되지요.
    모 대만인 왈, "뒷통수를 치지 않는 일본" ^^

    단교 당시 우리 정부의 외교상 실책으로 악감정이 생겼다고 해도, 20년 이상 지난 지금까지 그 악감정이 유지·증폭되는 건 역시 같은 동아시아 신흥경제국으로서 비교되는 열등감이 존재한다고 봐야할겁니다.
  • Ithilien 2013/03/09 04:12 #

    그거 헛소문이라는 소리가 있습니다. ㅡㅡa
  • NoLife 2013/03/09 04:18 #

    대만과의 단교 과정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확실한건 타국에 비해 외교관들에 대해 최대한 편의를 봐준건 사실입니다. 어느 나라들처럼 대사관의 수도랑 전기를 끊어버리지도 않았고 경찰을 동원해 두들겨패서 내쫓지도 않았죠. 거기다 일방적인 단교도 아니라 사전에 언질을 몇차례나 주었습니다. 설마설마하고 현실을 인정하지 못한 대만이 안일했던 거죠.
  • 벼리 2013/03/10 15:05 #

    정말 얍샵?하게 단교를 했었군요...흠...처음 제 생각은 왜 (군사 우방이었던) 다른 나라들도 같이 탈퇴를 했는데 왜 유독 우리한테만 저러냐는 거였습니다. 뭐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다른 나라들도 관계를 끊은건데...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그것이 이해가 안된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질투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믿었던 만큼 실망도 컸던 것일까요?
  • 푸른별출장자 2013/03/08 22:35 # 답글

    대만 사는데요...

    엊그제 한국팀 이기고도 탈락했을 때 대만 동료들이 제 눈치 보더라고요...
    저야 관심이가 없으니...

    혐한 혐한 하지만 나 한국인이요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 참 잘 대해줍니다...

    국가적으로는...
    옛날에 아니 10여년전까지만 해도 한국보다 대만이 훨씬 잘 살았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그렇지요... 뭐...
  • 벼리 2013/03/10 15:07 #

    저도 대만 친구가 3명 있는데 3명다 저한테 굉장히 우호적입니다...엄청 똑똑하구요...그런데 그때 제가 영상으로 봤던 경기장에서의 대만사람들은 정말 광분한...상태였고...저는 그것이 이해가 안갔습니다. 어느게 진짜 대만사람의 모습일까요?
  • 지나가다 2013/03/08 23:14 # 삭제 답글

    http://sports.news.nate.com/view/20130306n02216
    http://sports.news.nate.com/view/20130305n32873?mid=s0100
    http://sports.news.nate.com/view/20130305n33380?mid=s0100

    글쎄요. 남의 나라 국가 부르는데 야유나 하는 짓거리나 하고 위에처럼 일부도 아니고 대다수가 저따구로 노는데 우리가 뭐가 아쉬워서 먼저 관계 개선을 하지요?

    우리도 일본한테 저런 적 있다고 하실 분 계실 거 같아 말씀드리는데 참고로 재작년엔가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 쓰나미를 축하합니다라고 플랜카드 건 한국 관중(딱 한명이었는데)때문에 홈팀이었던 전북에서는 즉시 사과하고 그 관중은 영구 출입 금지 당했습니다.

    우린 대만에 관심도 없고 대만은 한국를 싫어하는 거 같으니 그냥 관계 끊고 각자 사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우리야 뭐 아쉬울 거 없으니깐.
  • Yeonseok 2013/03/09 00:56 # 답글

    뭐...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대만이 친일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대만 지역이 일본 기업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알게 모르게 일본에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일본과 대만과 국교단절했다고 하지만 말로만 국교단절이지 깊이 파고들면 대만인들이 친일 사람들이 많아 질수 밖에 없더군요. 좀 심하게 오바하면 식민지라고 봐도 될정도입니다.
  • 벼리 2013/03/10 15:09 #

    역시 현실적인 문제가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거겠죠? 저는 대만사람들이 중국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생각하는 줄 알았고, 우리나라가 일본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 민감하듯...대만도 그러한 역사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 킹오파 2013/03/09 03:24 # 답글

    지나가다라는 사람의 글 중에 나라도 한국 함정 구매하기 싫은데?
    비싼 돈 들여서 선진국에서 만드는 함정 냅두고 왜 후진국인 나라의 함정을 구매합니까?
    누가 봐도 삽질이라고 생각하지.

    오히려 내가 대만인이라면 대만 정치권이 한국에 돈 먹었구나 생각할꺼임.

    " 아 이넘의 정치권이 틀림없이 한국에 돈 먹었구나... 그렇지 않은 이상..." 이라고 생각할꺼임..

    일본 수상도 다나카였던가? 돈 먹어서 자리 물러났다고 들었는데...
    세계 최고의 군사 기술을 가진 록히드 마틴도 여객기 가지고 일본 수상에 돈 왕창 뿌리는 판국에...
    여객기만 돈 뿌리겠어. 군사 무기는 더하겠지.

    미국이나 유럽쪽 함정 냅두고 대관절 뭘 믿고 한국 함정 구매합니까? 로비 밖에 없을거 같은데????
    기술 공여를 원한다면 차라리 돈 더주고 선진국 함정 사지. 뭐하러 한국거 사요. 나라도 안사지.
  • 벼리 2013/03/10 15:13 #

    예전에 김정은 스마트폰인가? 삼성꺼 안쓰고 대만메이커였나...아무튼 다른나라 폰을 쓰더라구요...아무래도 만약 대만사람들이 한국을 싫어한다면...가격 대비 성능의 관점이 아니라 그런 혐한의 이유로 거부하지 않았을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도 전투기 미국꺼 많이 사니깐...성능이나 기술이전이 유럽이나 다른 나라가 좋아도 그런 분위기? 때문에 산다고도 들었습니다. 흠...함정쪽은 잘 모르겠지만...우리나라가 선박제조기술은 좋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부분은 우리에게 맡겨도 괜찮지 않을까요?
  • 킹오파 2013/03/10 15:50 #

    괜히 한국군이 비싼 미제 사는게 아니죠. 그만큼 성능이 보장되니까 사죠.
    한국의 선박 제조 기술은 싼 인건비로 배를 만들수 있다는 거죠.
    유럽과 미국은 남들이 하기 어려운 최첨단 기술 초호화 배를 만드는 거임.

    왜 유럽과 미국-> 일본-> 한국-> 중국 순으로 조선업 강자가 제편되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야...
    하여간 나라도 안 삽니다.
  • 滅灣興韓 2013/03/09 04:56 # 삭제 답글

    대만이 독립운동을 도왔다고 하지만 정작 임시정부를 인정하지는 않았죠. 그리고 그 도움을 공짜로 받았나요? 의열단부터 시작해서 심심하면 일본애들 들볶고 대일본 공작활동에 참여해준 댓가죠. 인연이 깊으나 시혜적 관계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한국전만 해도 그 사변덕에 대만섬이 공산당의 침략에서 멀어진것이고, 그 후 미국의 군사원조를 받게 됩니다. 애치슨라인에서 벗어난 것처럼 대만 패주시 이미 미국의 버림을 받은 상태라는 것. 김일성이가 여럿 살렸죠.

    또한 휴전협정에서 반공 중국인포로의 처치 문제는 휴전협정을 2년이나 지연시켰습니다. 본격 논의된 51년 여름부터 반공포로 문제가 불거져 곧 결렬된후 2년이나 더 싸워야 했습니다. 물론 이건 스탈린의 지시에 의한 지구전이기도 했지만 중공으로써도 위신의 문제였죠. 무려 중공군 포로 중 1만 3600여 명이 송환을 거부하고 대만으로 가버립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결단으로 그들은 자유와 생명을 얻었지만 그 댓가로 전체 전쟁기간 중 사망자의 절반이 지연된 기간 중에 발생했을뿐 아니라 모택동의 지시로 6만이 넘게 추산되는 한국군 포로가 북한에 의지와 달리 억류되었습니다.

    대만이 중화주의에 입각해서 도와준것 없이 거들먹거리지만 언제 한국정부의 인도적 노력과 한국민의 희생에 감사한적 있습니까? 미귀환포로의 운명과 연장된 전쟁으로 인한 고통은 제쳐놓고서라도 13000여명의 목숨에 감사한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그 생환 반공포로가 한국정부에 감사한적이 있습니까? 이승만은 미국의 극렬한 반발과 쿠데타 시도에도 불구하고 자유와 인도주의에 대한 소신을 지켰습니다. 대만의 아둔한 정치인중 그 누구가 대인의 행보를 보였던가요?

    대만은 배은망덕 그 자체입니다. 파렴치하기가 일본보다 더한 망국집단일 뿐입니다. 언제까지 한국인은 대만인의 거짓과 응석을 받아줄겁니까?
  • 지나가다 2013/03/09 09:09 # 삭제

    제 말이 바로 그말입니다. 그냥 대만이랑 관계 끊고 사는 게 우리도 편하지요. 과연 누가 아쉬운지?
  • 벼리 2013/03/10 15:33 #

    역사적 논쟁을 벌이려고 포스팅을 한 것은 아니지만...흠흠...저도 "시혜적 관계"라는 단어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때 기억을 되살려보면, 장개석이 처음부터 임시정부를 지원한건 아니었으나 일련의 활동? 일본 간부 저격 및 폭파 활동으로 주목을 끌게 되었죠. 그때 어느 신문중에 하나 구절을 생각해보면...중국인 몇 억이 못한 일을 한국 청년 한명이 해냈다 하며 대서특필되면서 중국 국민당 장개석의 주목을 끌게 되면서 활동을 지원(자금을 빌려준다든지) 했습니다. 솔직히 다시 받을 생각하고 준돈은 아니죠...임시정부의 존재가 일본의 힘을 약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일종의 투자라고 할까나...

    포로문제는 매우 중요했다고 배웠습니다. 기억에 의존한 댓글 양해 바랍니다. 북한쪽에서는 북한 출신의 병사들을 다 보내주는 것을 원했고, 남한...즉 UN측은 자기가 원하는 나라로 보내주는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러시아와 독일의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공산국가에서는 도망자나 포로는 대우를 배신자로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북한 정권이 싫거나 환멸을 느꼈던 자들도 있었겠죠. UN은 끝까지 주장을 유지했고...관철 시켰습니다. 당시 인천?인가 교토소는 매일 공산진영 사람들 끼리 다툼이 있었죠 배신자니 아니니 하면서...지키고 있던 헌병도 엄청 죽고 폭동도 엄청 일어났었고...워낙 사람이 많아 관리하기가 정말 힘들었다고 들었습니다. 평가하기가 힘들죠 지연시킨만큼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고통스러웠지만, 지연시킨 댓가로 또 많은 생명을 구하게 되었으니깐요. 한국군 포로 억류는 제가 들은 바가 없지만 사실이라면 휴전과정의 오점이 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대만정부가 그 목숨에 대해서 감사하게는 생각할 것 같지 않습니다. 대만이 직접 전쟁에 참여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쟁 난민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 제 생각에는 2013/03/09 10:48 # 삭제 답글

    대다수의 대만사람들은 반한은 고사하고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단지 조회수에 목마른 언론이 반한에게 과도한 조명을 몰아주는 것 뿐이지요.
    언론에 비치는 모습의 대만이 아니라 직접 대만 사람들과 교류해본다면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반한이 아예 없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적어도 제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한국에 우호적인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 벼리 2013/03/10 15:35 #

    ^^
  • 벼리 2013/03/09 10:58 # 답글

    많은 분들 의견 감사합니다. 대만에 대해 잘 몰랐는데 이번 기회에 많이 배우게 된것 같구요...특히 트랙백쓰신분 경제 정치적으로 접근하신게 글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
  • ㅇㅇ 2013/03/09 13:32 # 삭제 답글

    반한시위니 뭐니 보면서 대만은 한국에 관심이 많은 것 같지만 한국인들은 기본적으로 대만에 관심이 없죠.
    영향력이 큰 것도 아니고 소비할만한 문화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 벼리 2013/03/10 15:36 #

    제가 아는건 메인보드 아수스 기업밖에 몰랐는데...이번 기회에 많이 공부하는 것 같습니다 ㅎㅎ
  • 새벽과저녁 2013/03/09 14:01 # 답글

    1. 박정희 집권당시 외국인 재산에 대한 몰수조치가 있었고 주 타겟이 산둥반도 출신의 화교인사들이였습니다. 이 사건 이후 이들 대다수가 대만으로 건너간... 우리나라에 차이나타운이 존재하지 못했던 이유기도 하죠.

    2.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말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김구주석의 귀국시에 장개석이 백만달러 준건 유명.

    3. 미귀환 포로의 문제는 대만의 문제도 아닐 뿐더러 한국전쟁 당시 대만은 식량원조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한국전쟁이 중국군의 개입으로 확전되면서 대만역시 중국본토에 대한 전쟁준비로 바쁜 나머지 한국에 큰 관심을 갖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이는 중국군의 전력을 남방부에 묶어두는 효과가 있습니다.


    대사관 폐쇄건은 유명하지만, 딱히 언급할 필요는 없겠군요.
  • 滅灣興韓 2013/03/09 15:13 # 삭제

    1-1. 화교에 대한 토착민의 적대적 감정이 단순히 이방인에 대한 배타적 의식에 기반한 것이 었겠습니까? 임오군란으로 무력으로 진주하여 불평등조약을 맺고 우월한 상업적 지위를 이용해서 국내시장을 잠식하면서도 조선에 대한 긍정적인 투자나 기여가 없던 그들 탓이지. 일제시대 조선최대부호는 민영환 같은 친일패거리 외에는 화교였습니다. 그들이 한국에 한것은 색주가(소위 청요릿집이라는 기생집)를 연것과 물건떼다 판것일뿐 한국 사회에 장기적 발전의 초석이 되는 기술이나 자본의 투자는 없었습니다. 그에 더하여 국내 자본은 빨아들이면서 소비는 억제해서 가뜩이나 열악한 조선시장을 착취하였소. 금의환향 했을진 몰라도 장궤란 말이 수전노를 의미하게 될 정도로 베품과는 거리가 먼 족속들이었죠. 일본의 이간책 못지 않게 일제의 압잡이로 협화인으로 활동한 화교들의 반민중성은 부인할 수 없는 일. 월남이나 말레이 못지않게 돈벌고 뜯다는 뜨네기 의식으로 무장한 화교가 어떻게 비춰졌을지는 명약관화. 조선의 독립운동을 도운 서구인이나 일본인은 있어도 화교는 없었소.

    1-2. 그 어떤 나라도 특정 집단을 골탕먹이려고 화폐개혁이라는 위험천만한 것을 하지 않죠. 예외가 있다면 이북이 있을뿐.
    날품팔이 빈손으로 왔다가 거부가 되어 돌아가는 20세기 초의 중국인들이 한국에서 벌인 일이란 것은 재산을 숨기고 세금을 떼먹기 좋은 일들인데 그런 짓을 하다가 지하경제가 망가져서 손해를 본거지 그게 어째서 한국정부가 비난받을 일이오. 통화를 바꾸면서 결과적으로 손해를 본것이지.
    그리고 혼분식 장려한것은 화교에게만 강요한 것이 아니었소. 도시락 검사해서 백미밥 싸오면 비애국자인양 여기던 시대였고 한톨이 아쉬운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영양론, 주류제조원료규정, 단체급양 규제 등을 통해 온갖 방법으로 쌀소비를 억제하던 것이었소. 화교 골탕먹이러 백미밥 팔지 못하게 한것이 아니란 말이오.

    그리고 다른 동남아 제국은 이미 화교의 화교적 인정이 안되었는데 대한민국은 유독 대만과의 관계로 화교적(중국국적)을 인정하던 나라였소. 거기다, 화교는 군입대 면제에다 대만내 학교 진학시 별도의 쿼터로 양쪽의 혜택을 보는 집단이었소.

    2. 정당으로 인정하고 활동을 지원한 것이지 조선을 대표하는 정부로 보지 않았다는 소리요. 당연하기도 하지만.

    3-1. 반공포로 문제는 중화민국의 위신과 정통성에도 중요한 사안이었소. 북경만의 노심초사가 아니었다는 말임. 그리고 포로 신문과정에서 남의사로 알려진 대만측 심문요원이 개입했소. 그 과정에서 단순 심문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포로에 대한 학대도 만연했다는 말임.

    3-2. 중국은 한국동란을 치루면서도 해안을 봉쇄하고 위구르족들을 진압했을뿐 아니라, 51년 티벳의 해방조약을 맺고, 서북의 마가 회교도를 토벌했소. 섬서에서 청해에 이르는 광대한 면적에서 대규모 회교도 무장집단을 제압했다는 말이오. 또한 각지의 소규모 무장집단을 무장해제 했으며 윈난의 독립세력을 분쇄하고 미얀마 경내로 도망친 국민당 잔당을 지속적으로 견제했소. 중국정부가 한국전에는 해방군 능력의 10분의 1만 동원했다고 과장되게 말하는 것이 아예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오. 중국은 국내치안 외에도 적어도 4방면에서 대규모 군사력을 동원했소. 대만군이 한국전에서 제2전선을 열었던가요? 하이난 섬은 몰라도 주산군도라던가 복건해안의 산재한 섬들을 탈환했던가요? 60만 대군을 보유하면서 열심히 꿀빤거죠. 그 댓가가 오늘날의 대만의 고립이오.

    4. 주대북 한국대사관의 국기하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오. 또한 한국이 명동의 금싸라기 대만대사관을 중국에 넘겨준일도 논란이 있는 일이오. 사정없이 내쫓은 국가가 있는가 하면 친대만 민간단체에 넘기는 것을 묵인해준 국가도 많기 때문에 대만에 대한 가혹한 조치가 되었다는 것은 인정하오. 하지만 당시에는 수교협상과정에서 대만의 공작을 따돌려야 했을뿐만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의 맹방 북한의 정보망을 따돌려야 했소. 수교협상이 새어나간다면 단순히 대만의 항의나 훼방을 받을 서구국가와 달리 대한민국은 북한이라는 경쟁자의 결사적 방해에 맞서야 했던 것이오. 서구국가와 대한민국이 단교과정에서 놓인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주기 바라오. 중국은 북한에도 사후통보하여 김일성의 격노를 샀소. 대한민국이 중국만 일방적으로 배려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오.

    5. 비확산체제가맹국인 대만은 단교후 90년대 북한에 핵폐기물을 떠 넘기려 했소. 아사사태에 직면한 북한에 돈을 쥐어주고 핵쓰레기를 던지려고 했단 말이오. 이것은 대한민국의 주권을 유린한 행위일뿐만 아니라 대만의 국제사회에 대한 의무를 저버린 일이며 조약의 일원과 무관하게 국제관계의 일반적 도의를 무시한 폭거였소. 이후에도 대만은 여러차례 대만을 경유한 일본제 이중용도금수물자를 북한에 전달해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방조한 전력이 있소.

    결론 : 대만과의 불필요한 감정싸움은 조금도 국익에 기여를 하지 못하오. 하지만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은 대만은 대한민국의 호의를 악용했을뿐 아니라 적반하장으로 나오고 있다는 점이오. 대한민국이 대만이란 집단에 미안해할 이유는 전혀 없소.
  • 새벽과저녁 2013/03/09 16:38 #

    1. 비록 최상위 부유층의 다수를 "화교"가 차지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화교" 중에서 부유층의 비율은 여전히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임오군란으로 인해 한몫 잡으려 온 사람보다는, 청왕조의 붕괴로 인한 사회질서의 붕괴로 "먹고살기 위해" 빈손으로 온 사람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불평등조약"이 지속될 만큼 청 왕조가 계속 잘나간 것도 아니다보니.

    색주가가 문제라고요? 그럼 그 색주가를 이용한 사람은 대체 뭐죠? 그들이 없었으면 조선인이 그만큼 기생집을 차리지 않았을까요? 자본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다만 개인 혹은 집단의 능력 혹은 문화가 소유하는 자본의 양을 결정 지을 뿐이죠. 특히나 이런것은 수요가 공급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어느 사회나 홍등가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계 어느나라도 차이나타운=홍등가 인 경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 몇몇 예외를 과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어느 사람이 문제가 있으면 그 사람만 족치면 되는 것이지 전체집단을 공격하는 것은 문명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과 박정희의 화교 강제추방은 그 내면이 동일합니다.


    2. 통화를 바꾸면서 손해를 본게 아니라 직접적으로 토지몰수가 이뤄졌습니다. 남은 화교들이 차린 중국집 조차도 본인것이 되지 못했죠. 이걸 긍정하신다면 지금 오피스텔 혹은 집을 가진 사람들 모두 몰수하고 국유화 하자는 이야기랑 같습니다.
    당시 통화개혁을 통해 박 정권이 이익을 본건 극히 미미하며, 백미 못팔게 한건 제가 언급한 바가 없습니다. 만약 LA 한인타운이 몽땅 압류당하고 교민들이 한국에 빈손으로 들어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반미감정 안터질까요?


    3. 정당 문제는 당시 미국이 입국을 1년간 불허했던 건도 있고 해서 딱히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진 않은것 같지만, 여튼 돈을 그렇게나 준다는 것은 임시정부가 정식정부가 되길 희망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4. 대만측 심문관이 포로학대를 한 것과 한국전쟁이 연장된 이유는 연관이 없으며, 당시 대만은 미국과 연합해 본토공략 할 준비를 했는데 그에 협조적인 맥아더가 좌천되면서 일이 꼬인 겁니다. 어쨌든, 미국이 개입한다면 미공군의 지원 아래 방어군은 광범위한 지역을 방어해야 하고, 공격군은 한 지역만 노리면 되기 때문에 중공의 부담은 컸습니다. 티벳이나 위구르에 투입된 병력은 이 지역에 비하면( 비록 자료는 없지만 유추하건데 ) 한줌도 채 되지 않으며, 51년 여름이 되면 한국으로 진군한 중공군은 병력부족을 보이게 됩니다. 병력이 충분했으면 더 밀고 들어오죠.

    5. 북한의 방해를 따돌리며 중국과 수교해야 할 이유는 뭐죠? 어차피 중국은 북한을 살려줄게 명확한데, 북한입장에서라면 자신의 영향력이 주니 그럴법 하다가 해도 우리 입장에서는 중국과 교섭한다고 북한에게 우위에 설 내용은 없는 데요.

    6,핵패기물 건은, 분명 비양심적인 행태입니다만, 어느사회에나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다만, 나라에 따라 좀더 많은 돈과 안전을 약속할 뿐입니다만, 진짜 안전하다고 확신한다면 왜 자기집 옆에 두지 않고 왠 시골에다가 두겠어요?
    뭐.. 만약 우리가 대만과 그렇게 척을 두는 사이가 아니였다면 대만이 특별한 외교관계를 의식해서 그렇게 까지 나오지 않았을 지도 모르죠.

    7. 주장은 로그인을 통해서 하는게 좋다고 봅니다.
  • 아방스트랏슈 2013/03/09 16:31 #

    멸만흥한//

    1. 뭘 임오군란까지 올라가십니까? 그 때는 청나라로 아직 근대화 되지도 않았고, 만주사변 터지기 전이라, 일본의 식민지라는 동병상련의 처지도 아닌, 구체제의 형노릇을 아직 못버리던 때입니다. 거기까지 끌고 올라가셔서 중화민국을 판단하시면 곤란하죠. 중화민국은 한참 뒤인데...

    2. 대한민국 임시정부라고 자처하던 단체를 지원했는데.. 임시정부로 인정하지 않았다굽쇼?

    3. 대만은 원래 참전하려고 했습니다. 군대 스텐바이 상태였는데.. 미국이 제지했죠. 그래서, 대신 식량원조라도 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4. 중공군이었지만, 반공을 선택한 포로처분으로 지연된 책임을 왜 대만에 물으십니까? 중공에 물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제가 보기엔 파병한 것도 모자라, 잡힌 포로들이 가기 싫다는데, 데려가겠다고 고집부린 중공이 욕먹어야 될 것 같은데요?
  • 滅灣興韓 2013/03/10 02:01 # 삭제

    답글을 달까말까 잠시 고민했는데,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달죠. 블로거 주인장께선 밸리발행한 죄라고 생각하시고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SK 인수전에 계정을 가졌는데 지금은 존재하는지도 모르는데 로그인은 왜 찾으싶니까? 악플이라 생각됩니까? 주인장이 비로긴을 허용했으면 그걸로 된거지 비로긴을 마치 어그로종자처럼 여기는군요.
    1. 어떤 사회든 외부집단의 유입에 대한 결정권이 있습니다. 20세기초에 외세의 간섭으로 이것이 제대로 조절되지 못했을뿐이죠. 토착사회에 배타적이고 착취적인 도래집단을 환영하는 사회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2. 박정희정권은 화교에 대한 강제추방을 시행한적이 없습니다. 어떤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재산을 압류하고 추방하는 조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선 존재할 수 없고, 박정희시대도 유신집권기에도 이것은 시행된 바가 없습니다. 이건 말그대로 중상모략입니다. 70년대 사채동결로 전주들을 엿먹인 사례는 있지만 그때 화교자본이 입은 피해는 알려진바 없습니다. 외국인 토지제한은 미국같은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고는 최근의 세계화시대 이전까진 광범위한 제한이 일반적이었음. 토지의 사용목적과 면적, 상호주의에 입각한 토지소유제한은 비단 화교에 대한 제한이 아니라 국적을 벗어난 재외동포에 대해서도 예외없이 시행되었음. 토지몰수란 것이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모르겠으나 공산주의사회에서나 가능할 일을 대한민국이 자행했다면 경제운용에 광범위한 간섭을 가한 미국이 퍽이나 팔짱끼고 있었겠소.
    4. 한국의 희생으로 대만과 대만인이 혜택을 직간접적으로 누렸으니 결론적으로 감사해야 한다는 말이오. 당신 논리라면 한국전쟁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참전한 것이니 미국의 원조에 고마워할 이유없다는 주장과도 다름없소. 평가의 문제이니 딱히 지적하진 않소. 대만의 본토진격 능력은 줄곧 의문이었소. 미국의 제공 제해 원조가 아니더라도 대만은 제2전선을 열 수 있었고 그러지 않았소. 한국전에 대한 대만 참전은 전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에 이승만 박사가 거부했소. 이미 무능함을 입증한데다 군수물자만 축내서 한국군의 무장에 방해만 되었기 때문이오. 중공의 개입이후에도 대만군의 한반도 개입은 거론되지 않았소.
    5.언급할 가치도 없는 질문.
    6.대만은 npt위반

    끝. 더 알고 싶으면 본인이 찾아보길 바라오.
  • 새벽과저녁 2013/03/10 03:26 #

    1. 배타적인건 그럴수도 있겠는데, 착취적이라는건 동의할 수 없군요. 전쟁난민으로 탈출한 사람들이 착취할게 뭐 있나요.

    2. 중상모략이 아니라 1961년 9월 18일 외국인토지법으로 인해 화교 뿐만이 아니라 다른 외국인들도 토지수용을 당했습니다. 당시 토지 말고도 현금이나 귀금속등도 불법적으로 갈취당해서 자살한 화교도 있다고 하는데 그건 하더라 수준... 토지법 원문을 인터넷서 받을수 있는데 한자를 몰라서.. 제시는 못하겠네요; 어쨌든 이 몰수건 중에는 무려 양화진의 외국인 선교사 묘지도 포함되 있어요. 여기서 운좋게 피한 경우도 후일 "외국환관리법" 등으로 토지신규 구입은 물론 판매도 여러번 제지당합니다. 뭐.. 이걸 딱히 뭐라고 하긴 좀 그렇기도 한게 당시 한국인 지주들도 군인들에게 불려가서 국가가 지극히 헐값으로 토지를 수용하는데 동의하게끔 협박을 받았던 시대긴 합니다.

    3. 바다가 있기 때문에 중국은 본질적으로 대만을 칠 수 없죠. 대만과 중국간의 교전은 본토에 가까운 몇몇 섬에 한정되었을 뿐, 미국을 생각치 않더라도 당시 대만을 위협할 능력은 중국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대만이 한국에 감사할 이유는 없죠. 미국 원조가 없이 어떻게 대륙을 들어가나요. 에초에 국민당이 중국에서 밀린 이유가 미국의 지원중단과 중공에 대한 소련의 원조로 인해 전력이 역전되어서인데요. 전쟁 초반에 국민당군은 공산당군을 연파했는데, 대만이 무능하다는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무능한건 사단급 전쟁도 제대로 치뤄본적 없는 한국군이죠.

    4.로그인은 그런 문제가 있었군요. 그래도 이름을 거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어그로 문제가 아니라, 대화를 할 때에는 어느정도의 신뢰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보거든요.
  • 벼리 2013/03/10 15:41 #

    1. 외국인 재산에 대한 몰수조치가 있었다면 그것에 피해를 본 중국인들이 대만에 간게 사실이라면, 그 후손들은 당연히 한국을 싫어할 수 밖에 없겠군요

    2. 저도 임시정부를 인정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 정부가 "임시"라 폭넓은 외교활동(외교관을 파견한다든지 국가 교류라든지)은 할 수 없었지요...독립에만 신경썼으니깐요. 하지만 국민당하고 임시정부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습니다. "일본" 이라는 목표가 있었죠. 임시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상하이?에서 활동할 수 없게 방해했을 겁니다. 그러한 암묵적인 인정이 있었기에 우리가 활동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이죠.

    3. 포로에 관한 내용은 위에 언급했습니다.

    대사관 폐쇄라는 사건이 저는 오히려 궁금하네요 ㅋㅋ
  • 스근스근 2013/03/09 14:23 # 답글

    대만이 일본에 아주 우호적인 이유는 도올 김용옥 선생의 http://www.youtube.com/watch?v=MhCj6QVs6UY 강의를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 벼리 2013/03/10 15:42 #

    좋은 자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 ㅁㄷㄹ 2013/03/09 21:14 # 삭제 답글

    아직도 대만의 혐한 감정이 소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참...현실 부정도 적당히 했으면 좋겠음.
  • 벼리 2013/03/10 15:43 #

    그런 사회적인 흐름이 있다는건 사실인 것 같아요. 하지만 every people은 아닌 듯 하네요 ㅎㅎ 중요한건 문제가 있다면 원인을 파악하고 그것을 해결하면 되는거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우리가 원인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죠 ^^
  • 하늘색토끼 2013/03/10 19:55 # 답글

    한마디로 대만(중국국민당)에서 사는 사람들은 국가의식이 없다는 것이네요
    참쓸쓸한 민족이네요
  • 벼리 2013/08/02 00:28 #

    저는 그들도 국가를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중국이란 나라가 너무 크다는게 문제지요. 또한 중국과 대만은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친지나 친척도 중국 혹은 대만에 있는 경우도 있구요. 결정적으로 중국의 개혁 개방으로 인해 그들의 사상이 조금씩 희석되가는 느낌에서 중국과 대만이 서로 적대적인 관계로 돌아서는건 앞으로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유대관계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죠. 적대관계에서 나오는 경계적인 이익이 없기 떄문에.
  • muhyang 2013/03/11 23:57 # 답글

    한-대만 관계와 무관하게 각종 국제 스포츠 무대에 나가는 대만 대표팀의 자격이 '국가대표'가 아니기 때문에 대만 대표팀에 청천백일기를 쓰는 건 부적절합니다.

    어땠냐면, 한-대만 단교 전인 86/88 때라든가, 심지어 대만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 게임에서도 저 대만올림픽기를 썼거든요. 우리가 우호적으로 한다고 멋대로 청천백일기를 쓸 경우, 오히려 대만을 곤란하게 할 개연성도 있습니다.
  • 벼리 2013/08/02 00:25 #

    님 의견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만 총선 결과에서 보면 중국과 친하게 지내길 원하는 정당이 승리하기도 했으니깐요. http://www.kjdaily.com/read.php3?aid=1200236400101535s50 늦은 답변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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